
예방주사는 왜 맞아야 할까?
어릴 때 병원에 가면 주사 맞기 싫어서 엄마 뒤에 숨었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저도 그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이 된 지금도 주사 바늘은 좀 무섭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픈 것도 아닌데 굳이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인류와 전염병, 그 오랜 싸움의 역사
사실 예방주사 이야기를 하려면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전염병과 싸워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가 바로 천연두였습니다.
천연두는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인간을 괴롭혀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정말 오래된 질병이죠. 18세기 유럽에서만 매년 40만 명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고, 감염된 사람의 20~60%가 사망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감염되면 80%가 죽었다고 하니, 당시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상상이 갑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천연두는 전 세계적으로 3억에서 5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천연두 환자를 본 적 있으신가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에 천연두가 완전히 박멸되었다고 공식 선언했거든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전히 사라진 전염병이 된 겁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백신 덕분입니다.
에드워드 제너, 백신의 아버지
백신의 역사는 1796년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로부터 시작됩니다. 제너는 어느 날 소젖을 짜는 여인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소에게서 옮는 우두에 걸린 적이 있어서, 천연두에는 절대 안 걸려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이었는데, 제너는 이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과학자의 호기심이 발동한 거죠.
제너는 실험을 결심했습니다. 우두에 걸린 여인의 손에서 고름을 채취해서 여덟 살 소년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했습니다. 며칠 뒤 소년은 가벼운 우두 증상을 보이다가 금방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6주 후, 제너는 정말 대담한 실험을 합니다. 이 소년에게 진짜 천연두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한 겁니다. 요즘 같으면 윤리위원회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위험천만한 실험이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두라는 약한 바이러스가 소년의 몸에 천연두에 대한 방어력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제너는 이 방법을 '백신(vaccine)'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은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온 것입니다. 소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이름도 소에서 따온 거죠.
제너의 우두법은 처음에는 "소 고름을 맞으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는 황당한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두법의 효과가 입증되었고, 결국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제너는 돈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특허를 내지 않고 무료로 우두법을 공개했습니다. 덕분에 백신이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고, 인류는 천연두라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몸속의 군대, 면역 시스템
자, 이제 예방주사가 왜 효과가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가 있습니다. 바로 백혈구입니다. 백혈구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와 싸우는 병사들이에요. 그런데 이 병사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기억력'입니다.
면역 시스템의 핵심 선수들을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B세포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B세포는 항체를 만드는 공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병원체가 침입하면 B세포는 그 병원체에 딱 맞는 항체를 만들어서 내보냅니다. 항체는 마치 표적 미사일처럼 특정 병원체만 정확하게 찾아가서 달라붙어요. 항체가 달라붙으면 병원체는 활동을 못하게 되고, 다른 면역세포들이 와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T세포라는 친구도 있습니다. T세포 중에는 다른 면역세포들을 도와주는 보조 T세포도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죽이는 살해 T세포도 있습니다. 마치 군대에서 참모도 있고 특수부대원도 있는 것처럼요.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세포'입니다. 병원체와 싸운 B세포와 T세포 중 일부는 기억세포로 변해서 몸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습니다. 이 기억세포들은 한번 싸운 병원체의 특징을 기억하고 있다가, 같은 병원체가 다시 들어오면 즉시 알아차리고 훨씬 빠르고 강하게 반응합니다.
처음 병원체를 만났을 때는 항체를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병에 걸리고 아프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두 번째로 같은 병원체가 들어오면? 기억세포가 바로 반응해서 순식간에 대량의 항체를 쏟아냅니다. 병원체가 우리 몸에서 자리 잡기도 전에 제압당하는 거죠. 이게 바로 면역이 생긴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예방주사의 원리, 모의훈련을 시키는 것
그러면 예방주사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요? 간단히 말하면, 예방주사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모의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백신에는 병원체의 일부, 또는 약하게 만든 병원체, 혹은 죽은 병원체가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병을 일으킬 만한 힘은 없지만, 면역 시스템의 눈에는 적군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면역세포들이 출동해서 이 '가짜 적군'과 싸웁니다. 싸움이 끝나면 기억세포가 만들어지고, 이 기억세포는 몸속에 남아서 진짜 병원체가 들어올 때를 대비합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훈련을 하는 것처럼, 예방주사는 실제로 병에 걸리기 전에 면역 시스템을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진짜 병원체가 들어와도 이미 훈련받은 면역세포들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거예요.
백신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살아있지만 약하게 만든 병원체를 사용하는 생백신이 있고, 죽은 병원체를 사용하는 사백신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mRNA 백신처럼 병원체의 유전 정보만 사용해서 우리 몸의 세포가 병원체 단백질 조각을 만들게 하는 첨단 백신도 등장했습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실제로 병에 걸리지 않으면서 면역을 얻는 것이죠.
1차 면역 반응과 2차 면역 반응의 차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릴게요. 우리 몸이 처음으로 어떤 병원체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1차 면역 반응'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면역 시스템이 적을 파악하고, B세포가 활성화되어 형질세포로 변하고, 항체를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보통 며칠에서 일주일 이상이 걸려요. 그 사이에 병원체가 증식하면서 우리는 아프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병원체가 두 번째로 들어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때 일어나는 반응을 '2차 면역 반응'이라고 하는데, 기억세포들이 병원체를 즉시 알아보고 빠르게 활성화됩니다. 항체가 만들어지는 속도도 훨씬 빠르고, 양도 훨씬 많습니다. 병원체가 우리 몸에서 세력을 키우기 전에 제압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지도 않거나 증상이 아주 가볍게 지나갑니다.
예방주사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합니다. 백신을 맞으면 1차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기억세포가 만들어집니다. 나중에 진짜 병원체를 만나면 바로 2차 면역 반응이 일어나서 병에 걸리지 않게 되는 거죠. 백신 덕분에 실제로 병을 앓지 않고도 면역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소아마비, 백신의 또 다른 승리
천연두뿐만 아니라 소아마비도 백신 덕분에 거의 사라졌습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신경계를 공격해서 마비를 일으킵니다. 한번 마비가 오면 평생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심하면 호흡근까지 마비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1988년에는 전 세계에서 매년 35만 명이 넘는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에는 연간 환자 수가 22명으로 줄었습니다. 99.99% 이상 감소한 거예요. 이게 가능했던 건 전 세계적인 백신 접종 캠페인 덕분입니다.
미국의 조너스 소크 박사가 1955년에 최초의 효과적인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소크 박사는 제너처럼 백신의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백신의 특허는 누구 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소크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국민들 것이죠.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습니까?" 이런 선택 덕분에 백신이 저렴하게 보급될 수 있었고, 전 세계 수억 명의 어린이들이 소아마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소아마비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나라에서만 발병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박멸이 눈앞에 있는 상황입니다. 국제로타리,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등이 협력해서 지금도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단면역,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예방주사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보호합니다. 이걸 '집단면역' 또는 '군집면역'이라고 합니다.
집단면역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어떤 집단에서 면역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병원체가 전파되기 어려워집니다. 면역을 가진 사람은 병원체의 '숙주'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체가 다음 사람에게 옮겨갈 기회가 줄어드는 거예요.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마치 방화벽처럼 병원체의 확산을 막아주는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 백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아직 너무 어려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아기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서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이렇게 취약한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집단면역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보통 인구의 60~70% 이상이 면역을 가져야 합니다. 전파력이 강한 질병은 더 높은 비율이 필요합니다. 홍역의 경우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집단면역을 위해서는 인구의 83~94%가 면역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홍역 예방접종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유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집단면역 덕분에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서 집단면역이 형성되자, 천연두 바이러스는 더 이상 퍼져나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바이러스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천연두 예방접종을 맞지 않아도 됩니다.
백신의 종류와 발전
백신은 계속 발전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제너의 우두법처럼 다른 질병의 병원체를 이용했지만, 이후에는 같은 질병의 병원체를 약하게 만들거나 죽여서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이 방면의 선구자였습니다. 1879년, 파스퇴르의 조수가 휴가를 떠나면서 닭 콜레라균 배양액을 실온에 오래 방치해두었습니다. 파스퇴르가 돌아와서 보니 배양균이 약해져 있었어요. 보통이라면 버렸을 텐데, 파스퇴르는 이 약해진 균을 닭에게 주입해봤습니다. 놀랍게도 닭은 병에 걸리지 않으면서 면역이 생겼습니다. 실수에서 위대한 발견이 탄생한 순간이었죠.
오늘날에는 더 정교한 방법들이 사용됩니다. 병원체 전체가 아니라 병원체의 일부분만 사용하는 '구성단위 백신', 병원체가 만드는 독소를 무력화시킨 '톡소이드 백신',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mRNA 백신'까지 다양합니다. mRNA 백신은 병원체의 유전 정보를 우리 몸에 전달해서, 우리 몸의 세포가 직접 병원체 단백질을 만들게 합니다. 그러면 면역 시스템이 이 단백질을 인식해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나중에 진짜 병원체가 들어왔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예방주사, 언제 맞아야 할까?
예방접종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에는 엄마에게서 받은 항체로 보호받습니다. 이를 '수동면역'이라고 해요. 하지만 이 수동면역은 2~6개월 정도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방접종은 생후 2개월부터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에서 권장하는 필수 예방접종이 있습니다. BCG(결핵), B형 간염,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폴리오(소아마비), 홍역-볼거리-풍진, 일본뇌염, 수두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백신들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맞아야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부 백신은 한 번만 맞으면 되지만, 어떤 백신은 여러 차례 맞아야 충분한 면역이 형성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예방접종이 필요합니다. 독감 예방접종은 매년 맞아야 하고, 파상풍 백신은 10년마다 추가 접종이 필요합니다. 해외여행을 간다면 그 지역에서 유행하는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고려해야 합니다.
백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백신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백신을 맞으면 오히려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백신의 경우 아주 드물게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고, 실제로 병에 걸렸을 때의 위험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예를 들어, 경구 소아마비 백신은 약 240만 건 접종당 1건 정도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소아마비에 실제로 걸리면 마비가 올 확률이 훨씬 높고, 일단 마비가 오면 평생 회복되지 않습니다. 확률을 따져보면 백신을 맞는 것이 압도적으로 안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그 병이 없는데 왜 예방접종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국제 교류가 활발한 시대에는 언제든 해외에서 병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방접종률이 낮아지면 사라졌던 질병이 다시 유행하기도 합니다. 집단면역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어요.
마치며, 작은 주사 한 방의 큰 의미
예방주사는 단순히 주사 한 방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수백 년간 축적된 인류의 지혜와 과학의 결정체가 담겨 있습니다. 에드워드 제너가 용기 있게 실험을 했기에, 조너스 소크가 특허를 포기하고 백신을 공개했기에,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했기에 우리는 지금 많은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자, 동시에 사회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백신을 맞으면 내 주변의 취약한 사람들도 보호받게 됩니다.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아기,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이런 분들은 주변 사람들의 집단면역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백신이 만능은 아닙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백신은 지금까지 수억 명의 목숨을 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주사가 무서우신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불편함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요? 예방주사, 정해진 시기에 꼭 맞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인체다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신은 어떻게 만들까? (0) | 2026.01.07 |
|---|---|
| 손톱 발톱은 왜 계속 자랄까? (0) | 2025.05.07 |
| 사람의 위장은 어떤 역할을 할까? (0) | 2025.04.21 |
| 직모와 곱슬머리의 차이점 (0) | 2025.04.13 |
| 화상은 왜 발생할까? (0) | 202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