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박은 어떻게 생길까요? 하늘에서 쏟아지는 얼음 덩어리의 비밀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경북 지역에 우박이 쏟아져서 사과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화면에 비친 농민분의 표정이 정말 안타까웠는데요,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이렇게 밭 전체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망가진 건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저도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우박을 맞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해요. 진짜 하늘에서 돌멩이가 떨어지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왜 하필 여름에 얼음이 떨어지는 걸까요?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이 얼음덩어리는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오늘은 이런 궁금증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해요.
싸라기눈이랑 우박, 뭐가 다른 걸까요?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정리하고 갈까요? 겨울에 내리는 작은 얼음 알갱이를 싸라기눈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지름이 대략 2밀리미터에서 5밀리미터 정도 되는 작은 녀석들이에요. 땅에 떨어지면 통통 튀기도 하고, 맞아도 그냥 약간 따끔한 정도랄까요.
그런데 우박은 차원이 달라요. 기상청 기준으로 지름 5밀리미터 이상인 것들을 우박이라고 부르는데, 보통은 1센티미터 안팎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가끔은 야구공만 한 것도 떨어지고, 아주 드물게는 성인 주먹만 한 괴물급 우박도 있어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우박을 옛말로 '누리'라고 불렀다고 해요. 할머니들이 "누리가 온다"고 하시면 우박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세계 기록을 보면 더 놀라워요. 2010년 7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비비안이라는 작은 마을에 떨어진 우박은 지름이 무려 20.32센티미터, 둘레가 47.3센티미터였다고 해요. 배구공보다 큰 크기에 무게는 880그램이나 나갔다니, 이 정도면 하늘에서 볼링공이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게 공식적으로 인정된 세계 최대 우박 기록이에요.
더 무서운 기록도 있어요. 1986년 방글라데시 고팔간지 지역에 떨어진 우박은 무게가 1.02킬로그램에 달했는데, 이 우박으로 무려 92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1888년 인도에서는 야구공보다 더 크고 무게 170그램짜리 우박이 쏟아져서 246명이 사망하고 가축 1,600여 마리가 죽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답니다.
우박이 만들어지는 과정, 생각보다 복잡해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우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볼까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구름 속에서 물이 얼어서 떨어지는 거 아니야?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요, 알고 보니 꽤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친답니다.
우박이 태어나는 곳은 적란운이라는 구름이에요. 적란운은 흔히 '소나기구름' 또는 '뇌우구름'이라고도 불리는데, 하늘 높이 수직으로 쑥쑥 자라는 구름이죠. 이 구름은 보통 지상에서 10킬로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치솟는데, 구름 꼭대기 쪽은 영하 30도에서 40도까지 떨어지는 극도로 추운 환경이에요.
우박 형성의 핵심은 바로 '상승기류'예요. 지표면이 햇볕에 달궈지면 그 위의 공기도 따라 뜨거워지는데, 뜨거운 공기는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려고 해요. 이때 마침 상공에 차가운 공기가 있으면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면서 엄청난 상승기류가 발생해요. 이 상승기류가 얼마나 강하냐면, 초속 30미터에서 50미터에 달하기도 해요. 태풍의 강풍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런 강력한 상승기류 속에서 작은 얼음 결정이 태어나요. 구름 속에는 먼지, 모래, 꽃가루 같은 아주 작은 입자들이 떠다니는데, 이것들이 '응결핵' 역할을 한답니다. 수증기가 이 응결핵에 달라붙으면서 물방울이 되고, 구름 상층부의 추운 온도에서 얼어붙어 작은 얼음 알갱이가 돼요.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요. 이 작은 얼음 알갱이는 무거워서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강한 상승기류가 다시 위로 밀어 올려요. 그러면 위로 올라가면서 주변의 과냉각 물방울들을 잔뜩 붙이고, 다시 떨어지다가 또 올라가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구름 속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거예요.
과냉각 물방울이라는 게 뭐냐면,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로 있는 물방울을 말해요. 이게 얼음 알갱이에 부딪히면 순식간에 얼어붙어서 우박을 점점 크게 만들어요.
이렇게 구름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크기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상승기류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면 그때서야 땅으로 떨어져요. 큰 우박일수록 더 오래 구름 속에서 여행한 셈이죠.
우박을 쪼개보면 나무 나이테가 보인다?
우박에 관한 가장 신기한 사실 중 하나는 우박을 반으로 쪼개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여러 층이 보인다는 점이에요. 투명한 층과 불투명한 층이 번갈아 가면서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게 바로 우박이 구름 속을 오르내리면서 성장했다는 증거랍니다.
왜 투명한 층과 불투명한 층이 번갈아 생기는 걸까요? 이건 얼음이 얼어붙는 속도와 관계가 있어요. 구름 상층부에서는 온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물방울이 우박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얼어버려요. 이렇게 빠르게 얼면 공기 방울이 갇혀서 불투명하고 흰색을 띠는 층이 만들어져요. 반대로 구름 하층부에서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고 수증기가 많아서 물방울이 천천히 얼게 돼요. 이렇게 천천히 얼면 공기 방울이 빠져나갈 시간이 있어서 투명한 얼음층이 형성돼요.
그래서 큰 우박일수록 층이 많이 보여요. 그만큼 구름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위아래로 여행했다는 뜻이니까요. 또 구름 속에서 다른 우박들과 충돌하거나 서로 엉겨 붙기도 해서, 결과적으로 울퉁불퉁하고 비정형적인 모양을 띠는 경우도 많아요. 완전히 둥근 공 모양보다는 오히려 감자나 생강처럼 생긴 우박이 더 흔하답니다.
왜 하필 여름에 얼음이 떨어질까요?
이게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겨울이 아니라 왜 여름에, 그것도 더운 날에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 걸까요?
답은 앞에서 말한 상승기류에 있어요. 우박이 만들어지려면 얼음 조각을 공중에 붙잡아 놓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상승기류가 필요한데, 이런 상승기류는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야 생겨요.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만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상승기류가 생길 이유가 없어요. 그냥 추운 공기가 쭉 깔려 있을 뿐이죠. 반면에 늦봄이나 초여름에는 지표면은 뜨겁게 달궈지는데 상공에는 아직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어서, 이 둘이 만나면서 격렬한 대류 현상이 일어나요.
우리나라 기상 데이터를 보면 우박은 5월과 6월에 가장 많이 발생해요.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국 관측지점에서 관측된 우박 중 약 20%가 5월에, 19%가 6월에 발생했다고 해요. 이 시기가 바로 지면과 상공의 기온차가 가장 큰 때이기 때문이에요.
재미있는 건 한겨울이나 한여름에는 오히려 우박 발생 빈도가 낮다는 거예요. 1월부터 2월, 그리고 7월부터 8월에는 우박 발생이 전체의 5% 미만이라고 해요. 한여름에는 상공의 공기도 따뜻해져서 기온차가 줄어들고, 한겨울에는 대류 활동 자체가 약해지기 때문이랍니다.
우박이 떨어지는 속도, 생각보다 무서워요
우박이 그냥 천천히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요? 절대 아니에요. 우박은 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져요.
비는 공기저항 때문에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초속 9미터 정도, 시속으로 따지면 약 30에서 40킬로미터 속도로만 떨어져요. 그런데 우박은 밀도가 높고 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공기저항을 덜 받아요. 작은 우박도 시속 35킬로미터 이상으로 떨어지고, 큰 우박은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낙하해요.
1970년 미국 캔자스주 코피빌에 떨어진 역대급 우박은 낙하 속도가 시속 169킬로미터에 달했다고 추정돼요.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 속도로 하늘에서 무거운 얼음덩어리가 쏟아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충분히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속도예요.
우박 피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우박은 자연재해 중에서도 상당히 악질적인 축에 속해요. 지진이나 태풍은 피해가 크긴 해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대비할 시간이 있는 편인데, 우박은 갑자기 국지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대비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농업 분야예요. 우리나라에서 5월과 6월에 우박이 많이 내리는데, 이때가 바로 과일과 채소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죠. 사과, 배, 복숭아 같은 과수는 우박에 한 번 맞으면 표면에 상처가 생기고 멍이 들어서 상품성을 완전히 잃어요.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우박 피해 면적 중 과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서 95%에 달한다고 해요.
올해 5월에도 경북과 충북 지역에 우박이 쏟아져서 수백 헥타르 규모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어요. 단양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한 농민분은 20분 동안 세차게 내린 우박 때문에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며 눈물을 보이셨다고 해요. 멀쩡한 수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수박과 줄기가 상처를 입었다고요.
자동차도 우박에 취약해요. 땅콩만 한 크기의 우박이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큰 우박이 쏟아지면 자동차 표면이 곰보처럼 울퉁불퉁해지고, 유리창이 금가거나 아예 박살나기도 해요.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도 마찬가지예요.
항공기에게도 우박은 큰 위협이에요. 적란운 안에서 비행 중인 항공기가 우박을 맞으면 기체 표면이 심하게 손상될 수 있어요. 실제로 과거에 우박 때문에 비행기 기수 부분이 파괴된 사례도 있다고 해요.
우리 조상들의 우박 기록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우박 관측을 매우 체계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이에요. 삼국사기에도 우박 기록이 남아 있는데, 우박만을 표현한 '박(雹)'이 10회, 큰 우박을 뜻하는 '대박(大雹)'이 1회, 천둥번개와 함께 내린 '뇌박(雷雹)'이 3회, 비와 함께 내린 우박이 18회 기록되어 있어요. 우박의 크기를 밤알이나 계란에 비유한 기록도 있고, 우박에 맞아 새가 죽었다는 내용도 있어요.
고려사에는 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1013년부터 1392년까지 무려 188회의 우박 기록이 있는데,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달은 4월로 55회, 다음이 5월과 3월, 9월, 8월 순이었다고 해요.
조선시대에는 더욱 정밀한 관측이 이루어졌어요. 우박이 내린 날짜와 지역은 물론이고, 우박이 내린 지역의 너비와 길이, 시작 시각과 끝난 시각, 우박의 형상, 땅에 쌓인 우박의 깊이까지 기록했다고 해요. 우박 피해뿐만 아니라 발생 상황을 이렇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측한 건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해요.
우박 피해,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솔직히 우박은 완전히 막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갑자기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상 미리 대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어요.
과수원의 경우 그물망이나 가림망을 설치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에요. 구멍 크기가 1.25밀리미터인 촘촘한 그물망을 쳐두면 우박이 직접 과일에 닿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답니다.
만약 우박 피해를 입었다면 빠른 사후 대처가 중요해요. 과수의 경우 우박에 맞은 부위에 살균제와 영양제를 뿌려서 2차 병해를 예방해야 해요. 밭작물은 뿌리가 살아 있는 경우 항생제와 복합비료로 생육을 회복시키면 새로 심었을 때보다 오히려 생산량이 더 많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해두는 것도 방법이에요. 보험료의 50%에서 60%를 국가와 지자체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게 줄어들어요.
마무리하며
우박은 자연의 놀라운 현상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무서운 재해예요. 여름 하늘에서 얼음덩어리가 쏟아진다는 게 언뜻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 만들어내는 강력한 상승기류, 그리고 그 속에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며 덩치를 키우는 얼음 알갱이의 여정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우박을 반으로 쪼개면 보이는 나이테 같은 층들, 세계 최대 우박인 20센티미터짜리 괴물 얼음덩어리, 우리 조상들이 조선시대부터 체계적으로 남겨온 관측 기록들까지.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동시에 자연의 힘 앞에서 겸손해지게 되는 주제인 것 같아요.
혹시 다음에 소나기가 올 때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저 구름 속 어딘가에서 작은 얼음 알갱이가 위아래로 여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시길 바라요. 물론 실제로 우박이 쏟아지면 얼른 피하셔야 해요. 진짜 아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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