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는 왜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라질까?
어릴 때 일기예보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게 하나 있었다. "내일 중국 쪽에서 저기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날씨는 꼭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걸까? 왜 일본에서 비구름이 넘어온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을까?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정말 신기한 지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편서풍'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인데, 당시에는 시험용 암기로만 흘려들었다. 그런데 막상 제대로 파고들어 보니 비행기 티켓 가격부터 황사, 심지어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까지 연결되는 꽤나 중요한 개념이더라.
편서풍이 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거대한 바람의 흐름
편서풍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말 그대로 '서쪽으로 편향된(偏) 바람'이라는 뜻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바람이 어디서나 부는 게 아니라, 위도 30도에서 60도 사이의 중위도 지역에서만 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침 우리나라가 북위 33도에서 43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니, 딱 편서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 바람이 왜 생기는지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지는데, 최대한 쉽게 풀어보겠다. 지구는 둥글고, 태양열은 적도 부근에 가장 많이 도달한다. 그래서 적도 근처는 덥고, 극지방은 춥다. 이 온도 차이 때문에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적도에서 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서 극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위도 30도 부근에서 내려온다. 이렇게 내려온 공기가 다시 움직일 때 지구 자전의 영향을 받아서 오른쪽으로 휘어지게 된다. 북반구에서는 이 힘을 '전향력' 또는 '코리올리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 힘 때문에 원래 북쪽으로 가려던 바람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중요한 건 결과다. 이 편서풍 때문에 우리나라 상공의 공기는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 흐름을 타고 날씨 시스템도 함께 이동한다.
날씨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원리
자, 그럼 이제 본론이다. 왜 일기예보에서는 항상 "중국 쪽에서 저기압이 다가오고 있다"고 할까?
답은 간단하다. 저기압이든 고기압이든, 이런 기압 시스템들은 대기 중에 떠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대기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계속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결국 기압 시스템도 이 흐름에 실려서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강물 위에 띄운 나뭇잎이 물 흐르는 방향으로 떠내려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중국 상하이 지역에 저기압이 있어서 비가 내리고 있다면,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그 저기압이 동쪽으로 이동해서 한반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저기압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일본 열도로 넘어간다. 실제로 기상청에서는 이런 패턴을 기반으로 2~3일 후의 날씨를 예측한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철에 나타나는 '삼한사온' 현상도 이 원리와 관련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차가운 고기압이 발달하면 매서운 북서풍이 한반도로 내려와 춥게 만든다. 그러다가 이 한랭한 공기가 동쪽으로 빠져나가면, 양쯔강 유역이나 동중국해에서 발달한 온대 저기압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접근하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찾아온다. 이런 사이클이 대략 일주일 주기로 반복되면서 '3일 춥고 4일 따뜻한'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편서풍과 제트기류: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
여기서 잠깐,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편서풍'과 '제트기류'는 같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
편서풍은 대기대순환에 의해 중위도 지역의 대류권 하층부에서 부는 바람이다. 반면 제트기류는 훨씬 높은 곳, 대략 지상 9~12km 정도의 대류권 상부에서 부는 아주 빠르고 좁은 바람의 띠를 말한다. 제트기류의 형성 원인도 다르다. 이건 남북 방향의 온도 차이(온도경도)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적도의 따뜻한 공기와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경계면에서 강한 바람이 형성된다.
둘 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헷갈리기 쉬운데, 고도와 생성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다만 실생활에서는 이 둘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상층에서 부는 서풍" 정도로 뭉뚱그려 이해해도 크게 문제는 없다.
제트기류의 속도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평균적으로 겨울철에는 시속 130km, 여름철에는 시속 65km 정도인데, 가장 강할 때는 시속 300~400km까지 치솟기도 한다. 초속으로 환산하면 50~100m/s 수준이다. 태풍의 최대 풍속이 초속 30~50m 정도인 걸 감안하면, 제트기류가 얼마나 강력한지 감이 올 것이다.
재밌는 건 제트기류가 계절에 따라 위치와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겨울에는 극지방과 중위도 사이의 온도 차이가 커지면서 제트기류가 강해지고, 위치도 적도 쪽(남쪽)으로 내려온다. 반대로 여름에는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이런 계절적 변화가 우리나라 날씨 패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비행기 타본 사람들은 알 거다: 왜 갈 때와 올 때 시간이 다를까?
비행기를 자주 타시는 분들은 한 번쯤 눈치채셨을 거다. 인천에서 미국 LA로 갈 때와 LA에서 인천으로 올 때 비행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나도 처음에는 "설마 2시간이나 차이가 나겠어?" 싶었는데, 실제로 항공권을 검색해보니 정말 그랬다.
인천에서 LA로 갈 때는 대략 1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LA에서 인천으로 올 때는 1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무려 2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같은 거리인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답은 바로 편서풍과 제트기류에 있다. 인천에서 LA로 갈 때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이므로, 비행기가 편서풍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마치 바람을 등에 업고 가는 셈이다. 반면 LA에서 인천으로 올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므로, 편서풍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날아와야 한다. 마치 강한 맞바람을 뚫고 가는 격이다.
2020년 2월에는 정말 극단적인 사례가 있었다.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가는 영국항공 112편이 제트기류를 제대로 타면서 최고 시속 1,328km로 비행했고, 통상 6~7시간 걸리는 이 노선을 단 4시간 56분 만에 주파했다. 이건 음속 돌파를 했던 콩코드를 제외하면 일반 민항기 역사상 가장 빠른 대서양 횡단 기록이었다.
항공사들은 이런 기상 조건을 잘 활용한다. 동쪽으로 갈 때는 제트기류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태평양 항로를 선택하고, 서쪽으로 올 때는 제트기류를 피해서 북극 항로를 이용하는 식이다. "그냥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가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거리가 너무 늘어나서 연료비가 훨씬 더 많이 들고, 여러 나라의 영공을 통과해야 하는 복잡함도 생긴다. 결국 맞바람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가까운 경로로 오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황사도 편서풍을 타고 온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 누렇게 뿌옇게 변한 하늘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 황사도 편서풍의 산물이다.
황사의 발원지는 중국 내몽골 고원과 고비 사막, 그리고 몽골 지역이다. 봄철에 이 지역에서 저기압이 발달하면, 건조한 땅의 모래와 먼지가 상승기류를 타고 대기 중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공중에 떠오른 미세한 흙먼지는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해서 중국 전역을 거쳐 한반도에 도달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가 우리나라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편서풍을 타면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도착한다. 황사의 발원지가 대부분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있어서, 강한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이동하기가 더 수월하기도 하다.
문제는 황사가 단순한 모래먼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황사가 중국 동부의 공업지대를 통과하면서 각종 오염물질, 중금속, 미세먼지 등과 뒤섞인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황사로 인해 한 해 최대 181만 7천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고, 165명이 사망하기도 한다고 한다. 피해액을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연간 최대 7조 3천억 원에 이른다니,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편서풍 덕분에 피할 수 있었던 것: 후쿠시마 방사능
편서풍이 항상 나쁜 것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편서풍 덕분에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모면한 사례도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물질이 한국으로 날아올까 걱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했다. 왜일까?
바로 편서풍 때문이다. 편서풍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동쪽에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발생한 방사능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즉 태평양 쪽으로 이동했다. 실제로 후쿠시마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해안과 캐나다까지 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으로 오려면 바람이 반대로 불어야 하는데, 편서풍대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의 미세먼지와 황사는 편서풍을 타고 한국으로 오고, 일본의 방사능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한국을 비켜간다. 같은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방패가 되는 셈이다. 지구의 기상 시스템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한사온에서 폭설까지: 편서풍이 만드는 한반도 날씨 패턴
우리나라의 겨울철 날씨 특성을 이해하려면 편서풍과 함께 시베리아 기단, 그리고 제트기류의 움직임을 함께 봐야 한다.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엄청나게 차갑고 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이 발달한다. 이 시베리아 기단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고기압 중 하나다. 이 기단이 세력을 확장하면 북서계절풍이 한반도로 밀려들어와서 매서운 추위를 가져온다.
그런데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빠져나가면, 시베리아에는 다시 한랭한 공기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 보통 3~4일이 걸린다. 그 사이 북서풍은 약해지고, 양쯔강 유역이나 동중국해에서 발달한 온대 저기압이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해온다. 이때 상대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면서 '사온'이 된다. 그리고 시베리아 기단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면 또다시 '삼한'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층 대기에서 부는 제트기류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제트기류는 보통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지만, 때로는 남북으로 크게 출렁이면서 구불구불하게 이동하기도 한다. 이 패턴을 '편서풍 파동' 또는 '로스비파'라고 부르는데, 파장이 3,000~6,000km 정도 된다.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크게 굽이치면,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이례적인 한파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제트기류가 북쪽으로 굽이치면, 중위도의 따뜻한 공기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극지방에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제트기류의 움직임이 점점 불규칙해지고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상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결론: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것들
편서풍은 그냥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일기예보, 비행기 티켓 가격, 봄철마다 찾아오는 황사, 심지어 원전 사고의 영향권까지... 이 모든 것들이 편서풍이라는 거대한 대기의 흐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물론 편서풍만으로 모든 날씨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계절풍, 해류, 지형, 국지적인 기상 조건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우리가 경험하는 날씨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편서풍은 동아시아 지역의 기상 패턴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일기예보를 볼 때, 혹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할 때, 혹은 뿌연 황사 낀 하늘을 올려다볼 때 한 번쯤 편서풍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아, 저 구름도 서쪽에서 떠밀려 오는 거구나", "이 비행기도 지금 바람을 등에 업고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뭔가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편서풍이라는 거대한 흐름 위에서 살고 있다. 그 흐름을 이해하면, 날씨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참고 자료
- 기상청 날씨누리
- 위키백과 - 편서풍, 제트기류, 황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계절풍, 황사현상
- 파이낸셜뉴스 - "같은 목적지, 비행기 왕복 시간이 차이나는 이유?"
- 서울시 대기환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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