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압과 저기압은 뭘까?
"내일 고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이 맑겠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다 보면 이런 말을 정말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도 예전에는 '고기압이면 맑고, 저기압이면 비 온다' 정도만 알았지, 정확히 왜 그런지는 잘 몰랐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거죠.
그러다 얼마 전에 등산을 갔는데, 산 정상에서 컵라면을 끓이려고 했더니 물이 이상하게 빨리 끓더라고요. 근데 면은 또 제대로 안 익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가 "여기는 기압이 낮아서 그래요"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기압이라는 게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훨씬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고기압과 저기압이 정확히 뭔지, 왜 우리 날씨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좀 제대로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해볼게요.
기압, 도대체 뭔데?
기압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공기의 존재를 잘 못 느끼잖아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공기도 분명히 무게가 있습니다. 공기 분자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부터 대기권 끝까지 쌓여 있고, 이 공기들이 누르는 힘이 바로 기압입니다.
해수면 기준으로 우리가 받는 평균 기압은 약 1013hPa(헥토파스칼)인데요, 이게 어느 정도의 힘이냐면 1제곱센티미터의 면적에 약 1킬로그램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몸 전체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무게를 받고 있는 건데, 우리가 못 느끼는 이유는 몸 안에서도 같은 압력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산에 올라가면 귀가 먹먹해지는 경험 다들 해보셨죠? 비행기 이착륙할 때도 그렇고요. 이게 바로 외부 기압이 변하면서 우리 몸, 특히 고막이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 귀 안쪽의 공기가 팽창하려고 하거든요. 이럴 때 껌을 씹거나 침을 삼키면 좀 나아지는데, 유스타키오관이 열리면서 압력이 맞춰지기 때문이에요.
고기압의 특징: 하강 기류와 맑은 날씨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고기압 이야기를 해볼까요.
고기압이라는 건 주변보다 기압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적'이라는 표현이에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주변과 비교해서 높으면 고기압인 거죠. 예를 들어 1020hPa인 곳 주변에 1018hPa, 1019hPa이 있으면 1020hPa이 고기압이 되는 겁니다.
고기압 지역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강 기류가 발생하거든요. 왜 그럴까요? 고기압이라는 건 공기의 양이 많다는 뜻인데, 많은 공기가 밀집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아래로 누르는 힘이 강해지는 거예요. 마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것처럼, 고기압 중심에서는 공기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주변으로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공기가 하강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공기가 내려오면서 압축되거든요. 압축되면 온도가 올라갑니다. 에어컨 실외기 뒤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것도 같은 원리예요. 압축기에서 냉매가 압축되면서 열이 발생하는 거죠. 반대로 공기를 팽창시키면 온도가 내려가는데, 이게 냉장고의 작동 원리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고기압에서 공기가 하강하면서 압축되면 온도가 올라가고, 그러면 공기 중의 상대습도가 낮아집니다. 습도가 낮아지면 구름이 생기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고기압 아래에서는 대체로 맑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겁니다. 하늘이 파랗고 뭉게구름 하나 없는 그런 날, 십중팔구 고기압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거예요.
다만, 고기압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대기가 안정되면 공기 순환이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미세먼지나 대기오염물질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쌓이게 됩니다. 겨울철에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 맑긴 한데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공기가 갇혀버리는 거죠.
저기압의 특징: 상승 기류와 비 오는 날씨
저기압은 고기압과 정반대입니다. 주변보다 기압이 낮은 지역이에요. 저기압 지역에서는 공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승 기류가 발생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압이 낮다는 건 그 지역에 공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주변의 고기압 지역에서 공기가 밀려들어오게 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공기도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거든요. 이렇게 밀려들어온 공기는 저기압 중심부에서 갈 곳이 없으니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기가 상승하면 이번엔 아까와 반대 현상이 일어나요. 위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니까 공기가 팽창하게 됩니다. 팽창하면 온도가 떨어지고요. 온도가 떨어지면 공기 중의 수증기가 물방울로 변하면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구름이 커지면 결국 비나 눈이 내리게 되죠.
이게 바로 "저기압이 오면 날씨가 흐려진다"는 말의 과학적 배경입니다. 저기압은 구름 공장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상승 기류가 수증기를 끌어올리고, 높은 곳에서 냉각되면서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비를 내리는 것이죠.
참고로 비가 올 때 관절이 쑤시다는 어르신들 말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습니다. 기압이 낮아지면 관절 내 조직이 미세하게 팽창하면서 민감해지거든요. 그래서 저기압이 다가오면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분들이 계신 거예요.
바람은 왜 부는 걸까?
이제 바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바람이 왜 부는지 아시나요? 바람은 결국 기압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고기압과 저기압이 있으면, 공기는 자연스럽게 고기압에서 저기압 쪽으로 이동합니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요. 이 공기의 흐름이 바로 바람입니다.
기압 차이가 클수록 바람은 더 세게 붑니다. 일기도를 보면 등압선이라고 해서 기압이 같은 지점을 연결한 선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선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을수록 그 지역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분다는 뜻이에요. 등압선 간격이 넓으면 바람이 약하고요.
그런데 바람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직선으로 부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지구 자전의 영향이 나타나거든요.
코리올리 효과: 바람이 휘어지는 이유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합니다. 하루에 한 바퀴를 도는 거죠. 이 자전 때문에 지표면 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원래 가려던 방향에서 살짝 벗어나게 됩니다. 이걸 코리올리 효과 또는 전향력이라고 불러요.
프랑스의 수학자 가스파르-귀스타브 코리올리가 1835년에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요, 북반구에서는 움직이는 물체가 오른쪽으로 휘고,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휩니다.
이게 바람에도 그대로 적용되거든요. 북반구에서 고기압 중심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시계 방향으로 돌게 됩니다. 반대로 저기압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중심으로 모여들어요.
태풍이 왜 소용돌이치면서 도는지 아시죠? 바로 이 코리올리 효과 때문입니다. 태풍은 거대한 저기압이거든요. 북반구의 태풍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남반구의 태풍(사이클론)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합니다.
재미있는 건, 적도 부근에서는 코리올리 효과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적도 바로 위나 아래에서는 태풍이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태풍이 회전력을 얻으려면 최소한 위도 5도 이상은 벗어나야 하거든요.
한반도 날씨와 기압의 관계
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위치해 있어서 여러 기압 시스템의 영향을 번갈아 받습니다. 계절에 따라 아주 극적으로 달라지죠.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받습니다. 시베리아 대륙이 극도로 냉각되면서 차가운 공기가 쌓이고, 이 무거운 공기가 고기압을 형성하는 거예요. 이 고기압에서 밀려나온 찬 공기가 우리나라로 내려오면 한파가 찾아옵니다. "삼한사온"이라는 말도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이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하면서 생긴 거예요.
시베리아 고기압은 지표 부근에만 발달하는 '키 작은 고기압'이에요. 높이가 보통 1-2km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약해지고, 우리나라 남북 간 기온 차이가 크게 나타납니다. 서울이 영하 10도일 때 부산은 영상인 경우가 많은 이유죠.
반면 여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덮습니다. 이 고기압은 하와이 북동쪽 태평양에서 발원하는데, 덥고 습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키 큰 고기압'이라서 대류권 전체에 걸쳐 발달하고, 그래서 남북 간 기온 차이가 겨울보다 훨씬 적습니다. 전국이 골고루 덥죠.
장마는 이 두 기단의 경계에서 발생합니다. 북쪽의 차갑고 습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남쪽의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만나면서 전선이 형성되고, 이 전선을 따라 많은 비가 내리는 거예요. 북태평양 고기압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면 장마전선을 밀어올리고, 결국 한반도를 완전히 덮으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됩니다.
일상생활에서 기압의 영향
기압은 날씨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여러 곳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말씀드린 산에서 라면 끓이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기압이 낮으면 물의 끓는점이 낮아집니다. 해수면에서는 100도에서 끓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는 약 70도 정도에서 끓어요. 물은 끓는데 실제 온도가 낮으니 면이 제대로 안 익는 거죠. 그래서 고산 지대에서는 압력밥솥을 사용합니다. 압력을 높여서 끓는점을 올리는 원리예요.
비행기 안에서 과자 봉지가 빵빵해지는 것도 기압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밀봉된 과자 봉지가 기압이 낮은 고도로 올라가면 안의 공기가 팽창하니까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기압이 오면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일조량이 줄어들고 흐린 날씨가 지속되면 우울감이 높아질 수 있거든요.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저기압인 날에 정신과 응급실 방문 환자가 늘어난다는 걸 확인했어요. "오늘 선생님이 저기압이신 것 같으니 조심하자"라는 학생들의 농담에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죠.
두통이나 관절통도 기압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기압이 급격히 변할 때 민감한 사람들은 몸의 변화를 느끼곤 해요.
기압 변화를 예측하는 방법
예전에는 기압계(barometer)를 보고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기압이 올라가면 맑은 날씨가, 내려가면 비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봤죠. 요즘은 스마트폰에도 기압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서 앱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아이폰의 기본 날씨 앱을 보면 현재 기압이 표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압 하나만으로 날씨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온, 습도, 바람, 기압배치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든요. 그래서 기상청에서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서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보를 내놓는 거예요.
마무리하며
정리하자면, 고기압은 공기가 하강하면서 맑은 날씨를 만들고, 저기압은 공기가 상승하면서 구름과 비를 만듭니다.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고, 지구 자전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소용돌이 패턴을 만들어요.
이렇게 보면 기압이라는 게 참 신기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무게가 우리의 날씨를 결정하고, 심지어 기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니요. 앞으로 일기예보를 볼 때 "고기압이 확장한다"거나 "저기압이 접근한다"는 말이 나오면, 이제는 그 뒤에 숨은 과학적 원리가 떠오르실 거예요.
다음에 산에 가서 라면을 끓일 때, 비행기에서 귀가 먹먹할 때, 비 오기 전에 관절이 쑤실 때... 그럴 때마다 "아, 이게 다 기압 때문이구나" 하고 떠올려주세요. 우리는 매일 기압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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