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신성한 새에서 세계인의 식탁까지: 닭고기 식용의 역사
서론: 닭의 역설 – 신성한 새에서 세계적인 주식으로
오늘날 닭고기는 전 세계 식탁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육류 중 하나입니다. 2016년 기준 지구상에는 최소 227억 마리의 닭이 존재했으며, 이는 다른 어떤 조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연간 6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도축되고, 한국에서만도 2022년 기준 10억 7천만 마리가 도축되었습니다. 닭고기는 현대 인류에게 필수적인 단백질 공급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보편성과 달리, 닭이 인류 역사에서 차지했던 역할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닭은 처음부터 식용 목적으로 가축화된 것이 아니며, 오랜 기간 종교 의식, 투계(닭싸움), 부와 지위의 상징 등 비식용적인 목적으로 길러졌습니다. 닭고기가 오늘날처럼 대량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이 글은 "인류는 언제부터 닭을 먹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닭의 가축화 과정, 초기 사회에서의 역할, 식용 전환 과정, 그리고 현대 대량 소비에 이르는 여정을 고고학적, 유전학적,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추적합니다. 닭고기 식용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최근에 시작되었으며, 그 과정이 단순하지 않았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야계를 길들이다: 닭 가축화의 기원과 시기
닭의 조상, 적색야계
현재 집닭(Gallus gallus domesticus)의 주된 야생 조상은 동남아시아 열대 우림의 적색야계(Red Junglefowl, Gallus gallus)입니다. 유전학적으로는 회색야계(Gallus sonneratii) 등 다른 야계 종의 영향도 일부 확인됩니다.
농업이라는 촉매제: 벼, 기장 그리고 인간과의 만남
닭 가축화의 결정적 계기는 동남아시아의 건식 벼(dry rice) 및 기장 농사 시작과 관련이 깊습니다. 농경지 주변에 흩어진 곡식을 먹기 위해 야생 적색야계들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인간과 접촉이 잦아졌고, 이는 가축화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의도적 포획보다는 환경 변화에 따른 야계의 행동 변화가 시작점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가축화의 중심지와 시기: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
과거 1만 년 전 가축화설과 달리, 최근 고고학적 증거는 약 3,500년 전(기원전 1500년경) 동남아시아 가축화설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가장 오래된 집닭 유물은 태국 반논왓(Ban Non Wat) 유적(기원전 1650-1250년)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해당 지역 벼농사 도입 시기와 일치합니다. 닭은 개나 소, 돼지보다 훨씬 늦게 가축화된 것입니다.
과거의 주장과 계속되는 논쟁
중국 북부 가축화설 등은 뼈의 연대 측정 오류나 다른 조류 뼈와의 혼동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만, 중국 남서부(윈난성 카이위안쯔, 다둔쯔 유적 등)에서 더 이른 시기의 닭 관련 유물(뼈, 토기, 청동상)이 발견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이 지역이 또 다른 가축화 중심지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인도 인더스 문명 초기 가축화 주장도 있었으나, 현재는 기원전 1500-1200년경 시작설이 유력합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약 3,500년 전 동남아시아 기원설입니다.
이국적인 여행자: 초기 전파와 비식용적 역할
세계로 퍼져나가다
가축화된 닭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인간의 이동과 교역(특히 해상 교역)을 따라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주요 지역 도착 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 중부, 남아시아,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2천년기 후반
- 지중해 연안 유럽: 기원전 800년경
- 브리튼 섬: 기원전 500년경 도착, 기원전 100년경까지 희귀
- 한반도 및 일본: 기원전 100년 ~ 기원후 100년경
초기 인식: 이국적이고 신성하며 상징적인 존재
초기 닭은 식용보다는 이국적인 희귀 동물, 사회적 지위 상징, 종교적·의례적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 투계 (Cockfighting): 식용 목적과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고대 인도, 중국, 페르시아 등에서 성행했습니다. 종교 의식의 일부이기도 했고, 유럽 전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의례 및 매장 풍습: 도축 흔적 없이 온전한 형태로 매장되거나(반논왓, 유럽 철기/로마 유적), 사람과 함께 묻히는(성별화된 매장) 사례가 발견됩니다. 이는 닭이 죽은 이의 동반자, 지위 상징, 영혼 인도자(로마 메르쿠리우스 연관) 등으로 여겨졌음을 시사합니다. 다친 닭을 돌본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 점술과 예언: 고대 로마에서는 닭의 행동으로 길흉을 점치는 조점(Augury)이 성행했습니다.
- 지위, 다산, 남성성의 상징: 왕실 동물원에 전시되거나, 암탉은 다산의 상징으로, 수탉은 남성성과 활력, 선한 영혼(조로아스터교)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카이사르는 브리튼인들이 닭을 신성시하여 먹지 않고 즐거움을 위해 길렀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닭은 초기 전파 과정에서 식용 외 가치로 인해 여러 문화권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식탁 위의 자리: 점진적인 식용으로의 전환
경제적 이용의 가장 오래된 증거: 마레샤 유적
닭을 체계적으로 사육하여 고기와 달걀을 얻는 경제적 목적으로 이용한 가장 오래된 명확한 증거는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2세기) 이스라엘 마레샤(Maresha) 유적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닭 뼈(유적 전체 가축 유존체의 29%)가 출토되었고, 대부분 성체 뼈(80.6%)이며, 암탉 뼈가 수탉보다 2배 많아 달걀 생산 목적을 시사합니다. 산란기 암컷의 특징인 수질골(Medullary Bone)과 도축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cite: 29, 30, 31]. 마레샤는 동아시아 외 지역에서 닭을 경제적으로 이용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닭이 식량 자원으로 전환되는 중요 지점을 보여줍니다.
로마 제국의 영향력
로마 제국은 유럽 전역에 닭고기와 달걀 식용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광대한 영토, 교역망, 군대 주둔, 발달된 요리 문화(아피키우스 요리책에 17가지 닭 요리법 수록 )가 닭고기 소비를 일상화했습니다. 살찌우는 사육법이나 거세 수탉(카폰) 기술도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대 브리튼 섬에서는 기원후 3세기 이후에야 닭고기 소비가 확산되는 등, 로마는 식용 문화의 '기원지'라기보다는 '확산 및 정착' 역할을 했습니다.
지역별 시간차와 점진적 수용
유럽에서 닭 도입(기원전 800년경) 후 식용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탈리아 약 500년, 브리튼 약 700-800년 )이 걸렸습니다. 이는 기존의 문화적 인식을 극복하고 식용 가축으로 재분류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음을 보여줍니다. 북쪽 추운 기후 지역(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등) 정착에는 거의 1,000년이 더 걸려 기원후 500-800년경에야 닭 유물이 나타납니다.
상징에서 식량으로: 문화적 전환
닭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문화적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닭을 더 이상 특별하거나 신성한 존재가 아닌 식량 자원으로 여기기로 합의하는 의식적인 결정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지역별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로마 제국 등이 그 과정을 촉진했습니다.
한국 역사와 문화 속의 닭
한반도 도착과 초기 기록
한반도에서는 삼한 시대부터 닭 사육 기록이 나타납니다. 중국 역사서에는 한(韓) 지역 특산물로 "꼬리가 긴 닭"이 언급되며, 고구려는 '닭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구구타예설라)'로 불렸습니다. 한국 전통 닭 품종은 중국 윈난 지역 유래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상징적이고 신성한 역할
초기 한국사, 특히 신라에서 닭은 중요한 상징적·신화적 위상을 지녔습니다. 알영부인 탄생 설화(계룡 등장), 김알지 탄생 신화(흰 닭, 계림 유래) 등이 이를 보여줍니다. 가야 유물 중 닭 관련 토기나 금동관 장식도 발견되어 상징적 중요성을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식용을 지연시켰을 수 있습니다.
식용으로의 길: 달걀, 꿩 그리고 조선 시대
초기 한반도에서 닭은 고기보다 달걀이나 상징적 목적으로 길러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야 고분이나 신라 천마총에서 달걀 관련 유물이 발견됩니다. 닭고기 소비가 더뎠던 다른 이유는 꿩고기 선호 때문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꿩은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했으며,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조선 시대 닭고기 소비에 대해서는 상반된 기록이 있습니다. 다양한 닭 요리법(포계 등)이 존재했고, 개인이 사육·도축하기 용이했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요리법이 단순했고 주로 달걀을 위해 길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닭고기 소비는 소고기나 개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토종닭은 약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고고학적 난제: 닭인가, 꿩인가?
초기 한반도 닭고기 식용 여부를 고고학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닭 뼈와 꿩 뼈 구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과거 삼국 시대 고분 닭 뼈로 보고된 많은 유물이 실제로는 꿩 뼈였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삼한 및 삼국 시대 유적에서 닭 뼈가 출토되긴 했으나, 양이 제한적이고 꿩과의 혼동 가능성 때문에 당시 닭고기를 일상적으로 식용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하거나 불명확합니다.
현대의 닭: 산업화와 대량 소비
산업화 이전의 닭
20세기 이전 닭은 작고 성장 속도가 느렸으며, 주로 농가에서 소규모로 사육되었습니다. 주 목적은 달걀이었고, 닭고기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서양에서도 대량 사육은 질병 문제로 어려웠습니다.
20세기 혁명: 과학과 기술의 힘
닭고기가 저렴하고 풍부해진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 기술 발전 덕분입니다.
- 선택적 육종: 고기 생산 특화 품종(육계, 브로일러) 개발로 성장 속도와 크기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57년 영계가 두 달간 1kg 미만으로 자랐다면, 2005년에는 4kg 이상으로 자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공장식 축산 (Factory Farming): 대규모 밀집 사육(CAFOs, 배터리 케이지) 방식이 도입되어, 좁은 공간에서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수만 마리를 사육합니다. 항생제, 백신, 성장 촉진 약물 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식탁을 정복하다
산업화 결과, 닭고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가금류 생산량이 소고기, 돼지고기를 앞질렀고, 패스트푸드 산업 발달로 소비는 더욱 증가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세기 후반 산업화와 함께 대량 소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닭고기 대량 소비는 지난 70~80년 사이에 일어난 현상으로, 과학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결론: 우리 식탁 위 복잡한 역사
닭은 약 3,5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농업 발달과 함께 가축화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초기에는 식용보다 투계, 의례, 상징 등 비식용 역할이 더 중요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신화와 연결될 정도로 강한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체계적인 식량 자원으로서의 닭고기 소비는 가축화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시작되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 마레샤 유적(기원전 4-2세기)에서 초기 증거가 확인되고, 로마 시대를 거치며 유럽으로 확산되었지만, 수백 년이 걸리는 점진적 과정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꿩고기 선호와 상징성 등으로 대중적 소비가 더욱 늦어졌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닭고기 대량 소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 기술 발전 덕분에 가능해진, 역사적으로 매우 최근의 현상입니다. 닭 한 마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역사는 농업 발생, 문화적 신념, 교역, 제국, 현대 과학기술의 힘 등 인류 문명 변화를 반영합니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음식 속 깊고 복잡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주요 참고
- Earliest economic exploitation of chicken outside East Asia ... (PMC NCBI)
- The biocultural origins and dispersal of domestic chickens (PNAS)
- "닭은 외계인이었죠" 영국 과학자가 밝혀낸 치킨의 기구한 운명 - 중앙일보
- The true story and history of chickens - Cosmos Magazine
- How the Chicken Conquered the World - Smithsonian Magazine
- 3500년전 닭이 처음 인간에게 다가왔다 - Daum
- Major new international research reveals new evidence about when, where, and how chickens were domesticated | School of Archaeology, University of Oxford
- 신의 새에서 국민 음식으로, 닭고기의 기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 동아일보
- 동아시아 닭 사육의 확립 과정 및 그 역사적 전개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Missing puzzle piece for the origins of domestic chickens - PMC (NC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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