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나방, 왜 자꾸 헷갈릴까?
한 여름 오후, 화려한 날개를 펄럭이며 꽃을 찾는 나비 한 마리와, 저녁 무렵 현관 불빛 주변을 맴도는 작은 나방 한 마리를 상상해봅시다. 언뜻 보기에는 둘 다 날개 달린 비슷한 곤충이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저게 나비야, 나방이야?” 하고 헷갈리기 쉽습니다. 실제로 나비와 나방은 나비목(Lepidoptera)이라는 같은 곤충 분류군에 속하며, 전 세계에 거의 18만 종에 달하는 종 다양성을 자랑하는 큰 집단입니다. 같은 집안 식구다 보니 외형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이 둘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나비는 예쁘고 낮에 다니고, 나방은 밤에 나오는 벌레”라는 공식만으로는 이 둘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비와 나방의 외형적 특징, 생물학적 차이, 행동과 생태, 그리고 진화적 역사까지 폭넓게 살펴보면서, 왜 사람들이 이 둘을 자꾸 혼동하는지 그 이유와 함께 흥미로운 나비 나방 차이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외형으로 나누기: 날개와 더듬이의 차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나비와 나방의 구분법은 대부분 겉모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비는 날개에 예쁜 무늬와 색깔이 있고 날씬한 몸매를 가졌지만, 나방은 갈색이나 회색의 수수한 날개에 통통하고 털이 많은 몸을 가졌다”는 식이지요. 또 하나 자주 언급되는 특징은 더듬이(안테나)인데, 나비의 더듬이는 가늘고 끝이 곤봉처럼 둥글게 부풀어 있는 반면 나방은 빗살이나 깃털 모양으로 퍼져 있고 끝에 둥근 마디가 없습니다. 날개를 접는 습관도 다르다고들 합니다. 나비는 휴식할 때 날개를 위로 세워 접는 경향이 있고, 나방은 날개를 옆으로 펼치거나 지붕처럼 몸을 덮는 자세로 쉰다고 합니다. 이러한 나비와 나방의 외형적 차이는 아래 표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특징 | 나비 | 나방 |
---|---|---|
더듬이 | 가늘고 길며 끝이 곤봉 모양 | 깃털·빗살 모양 등 다양, 끝에 곤봉 없음 |
날개 휴식 자세 | 날개를 세워 합쳐 접음 | 날개를 수평으로 펼치거나 몸 위를 덮음 |
활동 시각 | 주행성 (낮에 활동) | 야행성 (밤에 활동) (일부 주행성 나방 제외) |
번데기 형태 | 경질의 껍질형 번데기 (크리설리스/허물) | 실로 감싼 고치형 번데기 (코쿤) |
몸과 날개 질감 | 몸이 홀쭉하고 비늘이 작아 매끈함 | 몸이 통통하고 털이 많아 보송함 |
날개 색깔 |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 | 갈색·회색 등의 은은한 색조 (화려한 종도 있음) |
이러한 일반론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지만, 예외가 많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일몰나방(주홍나비나방)은 무지개빛으로 오색찬란한 날개를 지닌 대표적인 나방으로, 한눈에 보면 나비로 착각할 만큼 화려합니다. 반대로 배추흰나비처럼 날개 색깔이 단조로운 나비는 언뜻 보면 “나방 아니야?”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수한 모습이지요. 이처럼 일부 나방은 일반적인 나방의 이미지와 달리 선명한 무늬와 색채를 뽐내고, 일부 나비는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라 겉모습만으로 둘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겉모습만으로 나비와 나방을 딱 잘라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외형상의 특징들은 참고 사항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며, 겉보기와 실제 분류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좌측의 검푸른 날개 곤충은 나방(쟈디악나방)으로, 나뭇잎에 앉아 날개를 좌우로 편 모습입니다. 우측의 주황색 날개 곤충은 나비(모나크나비)로, 잎에 앉은 채 날개를 위로 세워 접고 있지요. 이처럼 휴식 시 날개를 접는 방식에서 나비와 나방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비와 나방의 더듬이 비교: 좌측 위·아래는 나방의 머리 부분으로, 빗살처럼 갈라진 두툼한 더듬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우측은 나비(케른즈버드윙나비)의 머리로, 가늘고 매끈한 더듬이 끝이 동그랗게 곤봉처럼 부풀어 있습니다. 이처럼 더듬이 모양은 전통적으로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분류학적 관계: 나비는 특별한 나방?
겉모습 이야기만 듣고 “그래도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알겠다”고 생각하셨겠지만,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분류학적으로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지 고민해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비는 사실 나비목 내의 한 갈래에 불과하고 나방은 그 나머지 전부를 일컫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나비는 공통 조상을 지닌 하나의 분지군(단일계통)인 반면, 나방은 그 외 여러 갈래 곤충들을 묶은 모음집(측계통)입니다. 애초에 “나방”이라는 분류는 과학적 분류 체계라기보다 관습적으로 생긴 이름이어서, 나비목에서 나비에 속하지 않는 것은 전부 “나방”으로 통칭하게 된 것이지요. 과거 곤충학자들은 나비와 나방을 명확히 나눠보려 여러 하위 분류안을 제안했지만, 대부분 한쪽 그룹이 몇 개의 무리로 갈라지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례로 나비목을 더듬이 모양에 따라 “곤봉나비아목”(Rhopalocera, 곤봉 모양 더듬이)과 “나방아목”(Heterocera, 다양한 형태 더듬이)으로 구분하기도 했지만, 나방아목으로 묶인 곤충들은 서로 유연관계가 들쭉날쭉하여 자연 분류군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이분법 대신, 호랑나비과, 흰나비과, 부전나비과, 네발나비과, 팔랑나비과 등 몇몇 과(family)에 속하는 종들만 관습적으로 “나비”라 부르고 그 외 나비목의 수많은 종들은 모두 “나방”으로 부르는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비목 곤충들의 유전적 계통을 따져보면 나비는 나방 계통의 한 갈래에서 진화한 특수한 그룹이라는 점입니다. 즉 “나비는 낮에 활동하도록 진화한 나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신 연구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나비들은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에 당시 존재하던 어떤 나방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그 초기 조상 나비 애벌레는 콩과식물을 먹이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마침 그 시기는 꽃 피는 식물(현화식물)이 지구에 폭발적으로 다양해지던 때와 겹치는데, 나비 역시 이러한 꽃 식물의 등장에 맞춰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은 꽃의 꿀을 빠는 나비의 긴 입부분(대롱 모양 주둥이) 또한 백악기 동안 꽃식물이 번성하면서 같이 발달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결국 오래전 야행성 나방의 일부 후손이 주행성 생활에 적응하며 꽃과 함께 진화해나간 결과물이 나비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나비와 나방의 경계는 더욱 흐려집니다. 애초에 출발점이 같았고 현재도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가까운 친척격 생물들이다 보니, 과학적으로도 완전히 별개의 부류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는 것은 주로 인간의 인지 편의를 위한 범주화일 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사와 행동의 차이: 낮의 우아함 vs. 밤의 미스터리
나비와 나방은 생활사(life cycle)와 행동 양식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 활동 시간대부터가 확연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나비는 낮에 활발히 움직이는 주행성인 반면, 나방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입니다. 한낮의 화원에서는 색색의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어두운 밤 가로등 밑에서는 나방들이 빛 주위를 빙빙 돌며 춤추는 광경이 펼쳐지지요. (물론 예외적으로 낮에 활동하는 나방들도 있습니다. 위 사진의 쟈디악나방이나 일몰나방처럼 일부 나방은 아예 낮에 꽃을 찾아다니며, 반대로 저녁 무렵 활동하는 나비도 드물게 있습니다.) 이렇게 활동 시간이 다르다 보니 두 곤충은 감각 기관 면에서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나방은 어두운 환경에서 방향을 찾고 꽃을 찾기 위해 발달된 후각과 빛을 증폭시키는 특수한 겹눈 구조를 가졌습니다. 실제로 나방의 눈은 들어온 빛을 모아 증폭시키는 초집합시 형태라서 매우 희미한 빛에서도 주변을 밝게 볼 수 있지만, 그 대신 선명한 색채나 세부를 인식하는 능력은 떨어집니다. 반대로 나비의 눈은 각각의 시각 소단위가 별개의 상을 만든 뒤 뇌에서 합쳐 이미지를 처리하는 집합시 형태여서, 보다 또렷하고 정교한 시야를 제공해주는 대신 어두운 환경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지요. 후각 측면에서도,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암컷이 강한 페로몬(성적 유인 물질)을 분비하고 수컷이 이를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감지할 만큼 예민한 후각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낮에 활동하는 나비들은 주로 시각적인 신호(날개 색이나 구애 비행 등)에 의존하여 짝을 찾곤 합니다.
밤과 낮의 삶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전략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비의 주된 포식자는 낮에 시각으로 사냥하는 새나 잠자리 같은 곤충입니다. 그래서 나비들은 눈에 띄는 경고색이나 보호색으로 위장한 날개 무늬, 혹은 독이 있는 종을 흉내내는 의태(미믹리) 전략 등을 통해 포식자를 피하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반대로 나방을 노리는 대표적 포식자는 어둠 속에서 음파로 사냥하는 박쥐입니다. 이에 맞서 많은 나방들이 몸에 초음파를 감지하는 일종의 “귀” 구조를 진화시켰습니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따르면 일부 나방은 박쥐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약 3억 년 전부터 이미 청각 기관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박쥐와의 군비 경쟁이 나방의 청각 진화를 촉발했다는 기존 가설과 달리, 나방의 청각이 다른 용도로 먼저 생겼다가 이후 박쥐 회피에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오늘날 많은 나방들은 박쥐의 초음파를 탐지하면 급히 지그재그로 도망치거나 갑자기 땅으로 떨어지는 등의 회피 비행을 선보입니다. 일부 나방은 아예 초음파에 반응해 박쥐의 음파 탐지를 교란하는 소리를 내거나, 날개 뒤쪽에 긴 꼬리띠를 달아 박쥐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특수한 적응도 발달시켰지요.
나비와 나방은 완전탈바꿈(번데기 단계를 거치는 변태)을 하는 곤충으로, 애벌레 시절에는 둘 다 왕성하게 먹고 자라다가 고치를 짓거나 허물을 쓰고 번데기로 변신합니다. 이 번데기 단계에도 차이가 있는데, 나비 애벌레는 대개 실로 자신을 매단 뒤 껍데기가 단단한 번데기(나비에서는 흔히 번데기 또는 고치 없이 매달린다고 하여 _허물_로 불림)를 형성하는 반면, 나방 애벌레는 입에서 뽑아낸 실로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됩니다. 나비 번데기는 겉이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나방 번데기는 주변 재료에 싸여 숨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앞서 언급한 생활사 적응과 관련이 있는데, 낮에 포식자가 많은 환경에서는 번데기가 보호색을 띠거나 단단해지는 쪽으로, 밤에 은신하는 종들은 주변과 섞이는 고치를 만드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에서의 역할: 낮과 밤의 꽃방문자
나비와 나방 모두 꽃가루받이 곤충(pollinators)으로서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그 활약 무대가 다를 뿐입니다. 밝은 낮에는 나비와 벌들이 형형색색의 꽃들을 찾아다니며 식물의 수분(受粉)을 돕고, 해가 지고 난 밤에는 나방들과 박쥐들이 등장해 밤에 향기를 내뿜는 꽃들의 가임기를 책임집니다. 실제로 어떤 꽃들은 해질녘이 되면 더 강한 향을 풍기고 꽃잎 색을 옅게 만들어 어둠 속에서도 나방을 유인할 수 있게 진화했습니다. 예컨대 밤에 피어 향이 진한 밤꽃나무나 선인장 꽃들은 주로 나방에 의해 수분되고, 유카(용설란) 나무는 특정 나방(유카나방) 없이는 수정이 어려울 정도로 둘의 관계가 밀접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의외의 사실도 밝혀졌는데, 야간에 활동하는 나방들이 낮의 벌이나 나비 못지않게, 때로는 그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꽃가루를 옮긴다는 결과였습니다. 3년에 걸친 한 실험에서 밤에 열린 과수원의 꽃을 방문한 나방 등 야간 곤충들이 주간의 벌들 못지않게 꽃가루를 묻혀 수분을 시켰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나방이 단위 시간당 전달하는 꽃가루량이 낮의 곤충들보다 많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수많은 나방들이 “야간 교대조”로 생태계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꽃가루받이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닙니다. 나비와 나방은 수많은 새, 포유류, 곤충들의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먹이원이기도 합니다. 특히 애벌레 시절 엄청난 양의 잎을 먹어치우는 이 곤충들은 여러 동물에게 단백질 공급원이 됩니다. 새들은 봄철 번식을 위해 애벌레를 수없이 잡아먹여 새끼를 키우고, 거미나 개구리 등도 나비목 곤충을 포식합니다. 인간에게는 때때로 해충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나비 애벌레 중에는 채소 잎을 갉아먹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처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종류가 있고, 나방 애벌레 중에는 소나무 숲을 죽이는 솔나방, 곡식을 파먹는 밤나방, 과수에 해를 끼치는 재두루미나방 등 수많은 해충 종들이 존재합니다. 성충 나방도 옷을 좀먹는 옷좀나방이나 쌀벌레로 불리는 곡식나방처럼 인간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방이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애벌레 때 오로지 뽕나무 잎만 먹고 자라 고치를 짓는 누에나방은 인류에 값진 비단을 선물해준 고마운 곤충이지요. 또 나비와 나방 모두 환경 변화에 민감해서 생태계 건강의 지표로 여겨집니다. 근래 기후 변화나 서식지 파괴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나비와 나방 개체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곧 자연 생태계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나방들은 인공 조명의 증가(빛 공해)로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밤에 빛이 너무 밝으면 나방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교미 활동을 제대로 못 하여 개체군이 줄어드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찮게 여기기 쉬운 작은 나방 한 마리에도 이처럼 복잡한 생태적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진화의 역사: 나방이 먼저, 나비가 나중
나비와 나방 중에서는 누가 먼저 지구에 등장했을까요? 화석 기록과 유전 연구를 종합하면 나방이 먼저이고 나비가 나중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장 오래된 나비목 곤충의 화석은 쥐라기 초기 지층에서 발견된 약 1억9천만 년 전의 원시 나방 표본으로, 이미 날개에 비늘이 있는 형태였습니다. 꽃식물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이전부터 나방류 조상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지요. 이후 백악기 동안 꽃 피는 식물이 다양해지자 나비목 곤충들도 이에 맞춰 긴 대롱형 입 (프로보시스) 구조를 획득하며 꽃꿀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곤충과 식물이 서로 영향 주고받는 공진화(coevolution)의 무대를 펼쳤습니다. 1960년대에 폴 에를리히(Paul Ehrlich)와 피터 레이븐(Peter Raven)은 이러한 나비-식물 관계를 설명하는 고전적인 논문을 발표했는데, 식물이 애벌레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독성을 띠면 나비는 그 독을 견디도록 진화하고, 다시 식물이 새로운 독을 내는 식으로 밀고 당기는 진화 경쟁을 거듭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편 나방과 박쥐 사이에서도 비슷한 적자생존 드라마가 전개되었는데, 박쥐가 나타나자 나방은 귀와 교란음 같은 방어 수단을 진화시키고, 다시 박쥐는 이를 뚫는 전략을 마련하는 식입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나방의 청각 기관은 박쥐 등장 이전에 이미 진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이 고전 가설은 새로운 수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나비와 나방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둘의 공통 조상은 생각보다 훨씬 옛날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9년 발표된 한 연구는 오늘날 나비·나방의 공통 조상이 고생대 말인 약 3억 년 전에 출현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여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는 기존 통설보다 1억 년이나 이른 시점으로, 만일 이 가설이 옳다면 나비목 곤충은 쥐라기 이전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중생대에 이르러 꽃의 등장을 계기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번성하게 된 셈입니다. 어쨌든 나방들은 공룡시대부터 어둠의 세계를 무대로 번영해왔고, 이후 등장한 나비들은 낮의 세계를 개척하며 화려한 꽃들과 더불어 진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와 환경에 적응한 두 갈래가 오랜 세월 분화된 진화 경로를 밟아온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나비목 곤충들의 진화사는 인류 역사와도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인류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 곤충들은 산업혁명 이후 인공 불빛과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광공해와 기후 변화는 밤에 활동하는 나방과 계절에 맞춰 출현하는 나비들의 생태를 교란하며, 진화적으로 오랜 기간 안정됐던 생활주기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나비와 나방이 우리 시대에 들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 압력을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환경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수천만 년을 이어온 나비와 나방의 미래 진화 모습도 크게 달라질지 모릅니다.
이름에 담긴 이야기
사람들이 나비와 나방을 헷갈려하는 데에는 어쩌면 이름의 영향도 있을지 모릅니다. 한국어에서 “나방”이라는 말은 “나비”와 확실히 다른 곤충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흥미롭게도 옛 문헌을 보면 “날개 달린 벌레”를 통칭하는 말로 쓰인 예도 있습니다. 심지어 “불나비”라는 표현은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을 가리키는데, 이름에는 나비가 들어가지요. 서양에서도 상황은 비슷해서, 영어에서는 나비를 butterfly (버터플라이), 나방을 moth (모스)라고 완전히 다른 단어로 부릅니다. 버터플라이는 직역하면 “버터(butter)를 먹는 파리(fly)”인데, 그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한 가지는 봄철에 등장하는 노란색 나비(예를 들어 브림스톤나비)가 마치 버터 색깔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고, 또 다른 재미있는 설은 옛 유럽에서 마녀가 나비로 둔갑해 남의 버터나 우유를 훔쳐먹는다는 속신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한편 모스(moth)라는 말은 고대 영어 _모ððe_에서 유래했는데, 그 뿌리가 “구더기”를 뜻하는 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오래전부터 옷이나 곡식을 좀먹는 나방 애벌레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말 나비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나 조선시대 동요 ‘나비야 청산 가자’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예로부터 친근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여겨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나방은 순우리말이긴 하나 그 쓰임새에 부정적 뉘앙스가 담기곤 했습니다. 현대에도 누군가를 “나방 같다”고 하면 밤에 불빛에 홀린 듯 달려드는 모습이나 헤프게 좀스럽다는 뜻으로 쓰이니 말이지요. 이처럼 언어와 문화 속에서 나비와 나방은 다소 대조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러한 편견이 둘을 헷갈려하면서도 한쪽을 더 귀하게 여기게 만든 면도 있을 것입니다.
맺음말: 헷갈림 속에 담긴 놀라움
나비와 나방,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별개의 존재는 아닙니다. 둘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 낮과 밤으로 분업하며 자연계를 풍요롭게 만든 한 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둘을 헷갈려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눈 경계와 달리 자연에서는 나비와 나방 사이에 연속성이 있어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헷갈림 속에 오히려 더 큰 놀라움과 배움이 숨어 있습니다. “나방은 못생겼다”는 고정관념 뒤에는 일몰나방처럼 눈부신 존재가 숨어 있고, “나비는 연약하다”는 인식 뒤에는 박쥐를 따돌리는 치열한 생존 전략이 숨어 있지요. 이제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나비와 나방의 차이를 겉모습뿐 아니라 생태와 진화의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꽃밭에서 나비를 만나거나 밤중에 창가로 날아든 나방을 볼 때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낮의 꽃밭을 아름답게 수놓는 나비든, 밤의 어둠을 은은히 채우는 나방이든, 그들 모두 수억 년에 걸친 자연의 비밀을 품은 소중한 생명체임을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참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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