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석은 왜 특정 금속에만 붙을까요? (Fe, Ni, Co의 비밀)
일상 속 자성의 불가사의한 선택성
일상에서 우리는 냉장고 문에 메모를 붙이거나 필통을 여닫을 때 자석의 신비한 힘을 매일 경험합니다. 바로 자성(磁性)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자석은 왜 클립이나 못처럼 철로 만든 물체는 강하게 끌어당기면서도, 같은 금속인 알루미늄 캔이나 구리 전선, 금반지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요? 심지어 철 옆에 나란히 놓인 니켈과 코발트에는 붙으면서, 그 바로 옆의 구리에는 왜 무심한 걸까요?
"자석은 금속에 붙는다"는 우리가 흔히 품고 있는 생각은 사실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석은 특정한 전자 구조를 가진 극소수의 금속에만 반응합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수준의 미시 세계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자라는 작은 입자들이 어떻게 거대한 자석의 힘을 만들어내는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2500년 전에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마그네시아(Magnesia)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특별한 돌이 철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 돌을 '마그네타이트(Magnetite)'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자석(Magnet)'이라는 단어의 어원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신비한 힘이 어디서 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양자역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로소 자석의 비밀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 자력의 근원: 보이지 않는 전자의 춤
자석이 힘을 발휘하는 공간을 우리는 자기장(Magnetic Field)이라고 부릅니다. N극에서 나와 S극으로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선으로, 우리가 철가루를 자석 주위에 뿌리면 아름다운 곡선 패턴으로 나타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기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자성의 모든 비밀은 결국 전하를 띤 입자의 움직임이라는 단순한 원리로 귀결됩니다. 19세기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전자기학의 기본 법칙에 따르면, 전하가 움직이면 반드시 자기장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전선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그 주위에 자기장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원자 내부에 존재하는 전자가 바로 자성의 주인공입니다. 원자핵 주위를 맴도는 전자는 두 가지 중요한 움직임을 갖습니다. 첫째는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궤도 운동이고, 둘째는 전자 자체가 제자리에서 자전하는 듯한 성질인 스핀(Spin)입니다. 여기서 스핀은 실제로 전자가 회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자가 태생적으로 가진 양자역학적 성질입니다. 마치 전자가 작은 팽이처럼 회전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죠.
이 두 가지 움직임, 즉 궤도 운동과 스핀 모두 전하의 움직임에 해당하며, 각각 미세한 자기장을 만들어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전자는 그 자체로 극도로 작은 막대자석과 같습니다. 전자 하나하나가 작은 N극과 S극을 가진 꼬마 자석인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모든 물질은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왜 모든 물질이 자석처럼 행동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대부분의 물질에서 전자가 쌍(pair)을 이루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의 파울리 배타 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에 따르면, 한 쌍의 전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스핀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한 궤도에 사는 두 룸메이트가 서로 반대편을 향해 잠을 자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때문에 한 쌍의 전자 중 하나는 위쪽을 가리키는 스핀(up-spin, ↑)을 갖고, 다른 하나는 아래쪽을 가리키는 스핀(down-spin, ↓)을 갖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전자가 만드는 자기장이 서로를 정확하게 상쇄시켜버립니다. 한 전자가 만드는 N극이 다른 전자가 만드는 S극과 정확히 맞물려 전체적으로는 자성이 0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 플라스틱, 물, 그리고 구리나 금 같은 대부분의 금속이 자성을 띠지 않는 이유입니다.
2. 철, 니켈, 코발트의 특별함: 홀전자의 비밀
이제 핵심 질문에 다가갑니다. 왜 철(Fe), 니켈(Ni), 코발트(Co)는 특별할까요? 이들의 비밀은 바로 전자 껍질 구조, 특히 3d 궤도에 숨어 있습니다.
원자는 여러 개의 전자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각 껍질은 여러 개의 궤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번호 26번인 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철 원자는 총 26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1s, 2s, 2p, 3s, 3p, 3d, 4s 궤도를 차례로 채워갑니다. 전자 배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Ar] 3d⁶ 4s²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3d 궤도입니다.
3d 궤도는 총 5개의 하위 궤도를 가지고 있으며, 최대 10개의 전자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훈트의 규칙(Hund's Rule)에 따르면, 전자들은 가능한 한 각각의 궤도를 하나씩 먼저 차지하면서 모두 같은 방향의 스핀을 가지려고 합니다. 마치 버스에 탑승할 때 사람들이 처음에는 빈 좌석에 혼자 앉으려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철의 경우, 3d 궤도에 6개의 전자가 있습니다. 5개는 각각의 하위 궤도에 위쪽 스핀(↑)으로 하나씩 들어가고, 6번째 전자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전자가 하나 있는 궤도에 아래쪽 스핀(↓)으로 들어갑니다. 결과적으로 철은 4개의 짝 없는 홀전자(unpaired electrons)를 가지게 됩니다.
코발트(원자번호 27)는 [Ar] 3d⁷ 4s² 배치를 가지며 3개의 홀전자를, 니켈(원자번호 28)은 [Ar] 3d⁸ 4s² 배치를 가지며 2개의 홀전자를 가집니다. 이 짝 없는 홀전자들이 만드는 자기장은 상쇄될 상대가 없어 그대로 살아남게 되고, 이것이 원자 하나하나를 강력한 원자 자석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홀전자를 가진 원소는 철, 니켈, 코발트 외에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크롬(Cr)도 홀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강자성을 띠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철, 니켈, 코발트를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음에 설명할 자구(Magnetic Domain)의 형성 능력입니다.
3. 자구(Magnetic Domain): 원자 자석들의 거대한 동맹
이제 강자성의 핵심 비밀에 도달했습니다. 철, 니켈, 코발트가 자석에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홀전자를 가졌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자구(Magnetic Domain)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자구란 무엇일까요? 상상해보십시오. 수십억 개의 원자 자석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정렬한 거대한 집단입니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웨이브를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의 자구는 대략 마이크로미터(㎛, 1000분의 1밀리미터) 크기로, 그 안에 수십억 개에서 수조 개의 원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정렬이 가능한 이유는 교환 상호작용(Exchange Interaction)이라는 양자역학적 현상 때문입니다. 이는 파울리 배타 원리에서 비롯된 효과로, 인접한 원자들의 전자 스핀이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에너지적으로 더 안정해지는 경향을 말합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끌어당기듯이, 원자 수준에서도 이웃한 원자들의 스핀이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평범한 철못이나 클립은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기 전까지는 전혀 자성을 띠지 않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철 내부에는 수많은 자구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어지럽게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구는 북쪽을, 어떤 자구는 남쪽을, 또 다른 자구는 동쪽이나 서쪽을 향합니다.
마치 시끌벅적한 시장처럼, 각 자구가 만드는 자기장이 서로를 상쇄시켜버립니다. 북쪽을 향하는 자구의 N극이 남쪽을 향하는 자구의 S극과 정확히 상쇄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전체 자기장은 0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철이 자석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강력한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상황이 극적으로 변합니다. 철 내부의 자구들은 일대 변혁을 겪게 됩니다. 외부 자기장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던 자구들은 그 영역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이웃 자구들을 집어삼킵니다. 반대 방향을 가리키던 자구들은 영역이 좁아지거나 아예 방향을 180도 틀어버립니다. 이 과정을 자구벽 이동(Domain Wall Motion)이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철 내부의 수많은 자구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정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석의 N극을 철에 가까이하면, 철의 원자 자석들이 자신의 S극을 N극 쪽으로 향하도록 순식간에 재배열됩니다. 바로 이 순간, 평범했던 철 조각은 외부 자기장에 의해 유도된 임시 자석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N극(자석)과 S극(철) 사이의 강력한 인력, 즉 철이 자석에 착하고 달라붙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석을 떼어내면 대부분의 자구는 다시 원래의 무질서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일부 자구는 정렬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철이 약하게나마 자화(magnetization)되었다고 말하는 상태입니다. 만약 매우 강한 자기장을 가하거나 특수한 처리를 하면 이 정렬 상태를 영구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구자석입니다.
4. 금속이라고 다 같지 않다: 자성의 3가지 얼굴
이제 "왜 알루미늄이나 구리는 자석에 붙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습니다. 금속은 외부 자기장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1) 강자성체 (Ferromagnetic Materials)
우리가 일상에서 자석에 붙는다고 말하는 유일한 물질 부류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철(Fe), 니켈(Ni), 코발트(Co) 및 이들을 포함한 합금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경우 일부 종류는 강자성을 띠고 일부는 그렇지 않은데, 이는 합금의 정확한 조성과 결정 구조에 따라 달라집니다.
강자성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앞서 설명한 자구를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외부 자기장에 매우 강하게 반응하여 쉽게 자화되며, 자기장이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자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잔류 자성(remanence)이 바로 영구자석을 만드는 원리입니다. 강자성체가 외부 자기장에 끌리는 힘은 상자성체에 비해 수십만 배에서 수백만 배나 강합니다.
(2) 상자성체 (Paramagnetic Materials)
알루미늄(Al), 백금(Pt), 마그네슘(Mg), 티타늄(Ti) 같은 금속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물질들도 자석에 끌어당겨집니다. 하지만 그 힘이 너무나 약해서 일상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상자성체도 홀전자를 가지고 있어 원자 하나하나가 작은 자석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강자성체와 달리 자구를 형성할 만큼 원자 간의 교환 상호작용이 강하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이 원자 자석들이 열에너지 때문에 무작위한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외부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원자들이 일시적으로 자기장 방향으로 정렬하여 매우 약한 인력을 보이지만, 자기장을 제거하면 즉시 다시 무질서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상자성체가 자석에 끌리는 힘은 강자성체의 약 수십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냉장고 자석으로는 알루미늄 캔을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매우 강력한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면 상자성체의 미약한 자성을 측정할 수 있으며, 이는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의료 기기에서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3) 반자성체 (Diamagnetic Materials)
구리(Cu), 금(Au), 은(Ag), 아연(Zn), 그리고 놀랍게도 물(H₂O)을 포함한 대부분의 물질이 여기에 속합니다. 사실 모든 물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자성을 띱니다.
반자성체는 홀전자가 없어 원자 자체는 자성을 띠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부 자기장이 다가오면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원자 내의 전자 궤도가 미세하게 변형되면서, 마치 방해를 받은 물체가 저항하듯이 외부 자기장을 밀어내는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유도합니다. 이것은 렌츠의 법칙(Lenz's Law)의 원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반발력 역시 극도로 미약합니다. 구리 동전을 강력한 자석에 가까이 가져가도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Andre Geim)과 그의 동료들은 1997년에 매우 강력한 자기장(약 16테슬라)을 이용하여 살아있는 개구리를 공중에 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개구리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고, 물은 반자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실험은 2000년에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결국 알루미늄 캔은 상자성체로서 매우 약하게 끌리고, 구리 동전은 반자성체로서 매우 약하게 밀려나지만, 두 힘 모두 너무 미약해서 우리 눈에는 그냥 반응 없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직 철, 니켈, 코발트와 같은 강자성체만이 우리가 일상에서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자석에 반응합니다.
5. 온도가 자성을 앗아가다: 퀴리 온도의 비밀
강자성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온도입니다. 철, 니켈, 코발트를 충분히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강자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평범한 상자성체로 변합니다. 이 임계온도를 퀴리 온도(Curie Temperature)라고 하며, 1895년 이 현상을 발견한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철의 퀴리 온도는 약 769°C(1043K), 니켈은 약 358°C(631K), 코발트는 약 1127°C(1400K)입니다. 이 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원자들의 열적 진동이 극도로 격렬해지면서, 그동안 질서정연하게 정렬되어 있던 자구 내부의 원자 자석들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실온에서는 교환 상호작용이라는 양자역학적 힘이 열에너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원자 자석들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원자들의 열적 진동 에너지가 점점 증가하여, 결국 교환 상호작용의 힘을 압도하게 됩니다. 마치 강풍이 불 때 정렬된 깃발들이 제각각 흔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퀴리 온도에 도달하는 순간, 자구의 질서는 완전히 붕괴됩니다. 이제 원자 자석들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무작위한 방향을 향하며, 강자성체는 상자성체로 변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매우 급격하게 일어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象입니다.
이 원리는 실생활에서도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납땜 인두기(soldering iron)의 온도 조절 장치는 퀴리 온도를 이용합니다. 인두기 끝이 특정 온도(퀴리 온도)에 도달하면 자성을 잃어 전자기 스위치가 작동하여 전원을 차단하고,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자성을 회복하여 전원이 다시 들어오는 방식입니다.
6. 금속의 왕 철과 그 동료들의 실생활 활약
철은 인류가 사용하는 금속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금속의 왕입니다. 철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저렴하고 튼튼하며, 무엇보다 강자성이라는 독특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철이 자석에 붙지 않았다면, 현대 문명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전기 모터와 발전기는 현대 산업 사회의 심장입니다. 자동차, 세탁기, 엘리베이터, 선풍기, 심지어 전기차까지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기계에 모터가 들어있습니다. 이 모터들은 모두 전자기 유도 원리로 작동하는데, 구리선 코일(전기)과 자석(자기장)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기계적 운동 에너지로 변환합니다. 이 과정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자성체인 철심(iron core)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철심은 자기장을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증폭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저장 분야에서도 강자성은 오랫동안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하드디스크(HDD)는 강자성 물질(주로 산화철이나 코발트 합금)로 코팅된 원판 표면의 미세한 자구 방향을 조작하여 정보를 저장합니다. 한 자구의 N극이 위를 향하면 1, S극이 위를 향하면 0으로 해석하는 식입니다. 최근에는 플래시 메모리와 SSD가 대세가 되었지만, 대용량 데이터 저장에는 여전히 하드디스크가 널리 사용됩니다.
스피커와 마이크 역시 강자성의 마법을 활용합니다. 스피커는 전기 신호를 자석과 코일(철심 포함)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동으로 바꾸어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마이크는 그 반대 과정으로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합니다.
자기공명영상(MRI)은 의학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킨 기술입니다. MRI 기계는 매우 강력한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여 인체 내부의 수소 원자핵을 정렬시키고, 이들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방출하는 신호를 측정하여 고해상도 이미지를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철을 포함한 조영제를 사용하면 특정 조직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나 교통카드의 마그네틱 띠 역시 강자성 물질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카드 소유자의 정보가 자기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카드 리더기가 이를 읽어냅니다.
반대로 알루미늄이나 구리가 자석에 붙지 않는 성질도 매우 중요합니다. 알루미늄은 가볍고(상자성이지만 반응 미약), 녹슬지 않으며, 전기 전도성도 우수하여 음료수 캔, 비행기 동체, 건축 자재로 널리 쓰입니다. 만약 알루미늄이 강자성을 띠었다면, 공항의 금속 탐지기가 오작동하거나 비행기가 지구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항해에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구리는 금속 중에서 은 다음으로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면서도 은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구리가 반자성체여서 자기장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모든 전선과 전자 회로의 핵심 재료로 사용됩니다. 만약 구리가 강자성을 띠었다면, 전자기기 내부의 자기장이 서로 간섭하여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결론: 보이지 않는 양자 세계가 만든 일상의 마법
자석이 특정 금속에만 강력하게 붙는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철, 니켈, 코발트가 가진 독특한 전자 구조, 특히 3d 궤도의 홀전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더 나아가 이 원자 자석들이 양자역학적 교환 상호작용을 통해 자구라는 거대한 집단 질서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철 조각 내부에는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 수많은 자구 마을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자석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이 자구들은 순식간에 한 방향으로 정렬하여 스스로 강력한 임시 자석이 되어 착 하고 달라붙게 됩니다. 마치 무질서했던 군중이 갑자기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알루미늄이나 구리 같은 다른 금속들은 홀전자를 갖지 않거나, 홀전자를 가지더라도 자구를 형성할 만큼 강한 교환 상호작용을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석의 힘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온도는 이 모든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열쇠입니다. 퀴리 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열에너지가 교환 상호작용을 압도하여, 질서정연했던 자구의 정렬이 무너지고 강자성은 사라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모든 물리적 현상이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단순해 보이는 현상 속에는 원자 수준의 정교한 물리 법칙과 양자역학의 깊은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냉장고 자석 하나에도 전자의 스핀, 파울리 배타 원리, 교환 상호작용, 자구 형성이라는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번에 냉장고에 메모를 붙일 때, 그 작은 자석 속에서 수조 개의 원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같은 방향을 향해 정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리고 철 클립이 자석에 달라붙는 순간, 그 내부에서 수십억 개의 자구가 일제히 방향을 바꾸며 임시 자석으로 변신하는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음을 상상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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